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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신과 사이토카이닌 — 나무가 자랄 방향을 정하는 두 호르몬의 밀당

정성껏 삽목(꺾꽂이)을 해두고 며칠씩 들여다봐도 뿌리가 안 나오거나, 접목한 가지는 잘 붙은 것 같은데 좀처럼 새 눈이 트지 않아 애태운 경험 있으신가요?

이럴 때 겉으로 보이지 않는 식물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면 답답함이 조금 풀립니다.

바로 옥신(Auxin)과 사이토카이닌(Cytokinin)이라는 두 식물 호르몬이 쉴 새 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여기는 뿌리로 자라라, 저기는 줄기로 뻗어라” 하고 방향을 정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호르몬이 각각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이들의 ‘균형’이 텃밭 현장(삽목, 접목, 전정)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지 알아보겠습니다.

옥신과 사이토카이닌 호르몬의 특징과 그에 따른 식물의 생리를 보여주는 웹툰

식물 성장의 두 가지 스위치

  • 옥신(Auxin): 식물을 ‘아래로(뿌리 내림), 길게’ 자라도록 이끕니다.
  • 사이토카이닌(Cytokinin): 식물을 ‘위로(새순 틔움), 갈라지게(곁가지)’ 만듭니다.
  • 핵심 원리: 두 호르몬의 비율에 따라 상처 부위가 뿌리가 될지, 줄기가 될지 운명이 결정됩니다.

옥신과 사이토카이닌, 각각 무슨 역할을 하나요

두 식물호르몬은 식물체 내에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일합니다.

  • 옥신 (Auxin): 주로 줄기 맨 끝의 생장점이나 어린잎, 열매에서 만들어집니다.

    생성된 후에는 일방통행으로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가며(극성수송) 세포를 길게 늘이고 뿌리 발생을 팍팍 촉진합니다.

    시중에서 파는 삽목용 ‘발근촉진제(IBA)’의 주성분이 바로 이 옥신입니다.

  • 사이토카이닌 (Cytokinin): 반대로 주로 뿌리 끝에서 만들어집니다.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함께 물관을 타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세포분열을 촉진하고 곁눈(측아)이 트도록 돕습니다.

    잎이 늙어 떨어지는(노화) 현상을 늦춰주는 역할도 합니다.

두 호르몬의 비율이 식물의 운명을 결정한다

식물에 상처가 나면, 사람의 딱지처럼 상처를 덮고 치유하는 만능 줄기세포 덩어리가 생기는데 이를 캘러스(Callus, 유합조직)라고 부릅니다. 이 미분화 세포 덩어리는 두 호르몬의 비율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 옥신 비율이 높을 때: 캘러스에서 뿌리(Root)가 만들어집니다.
  • 사이토카이닌 비율이 높을 때: 캘러스에서 줄기와 눈(Shoot)이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접붙이기(접목)를 했을 때 접목 부위가 단단하게 잘 아물고, 이윽고 접수의 눈이 힘차게 트는 원리도 바로 이 절묘한 호르몬 균형 덕분입니다.

구분옥신 (Auxin)사이토카이닌 (Cytokinin)
주 생성 위치줄기 꼭대기, 어린잎, 열매뿌리 끝, 어린 씨앗
이동 방향위 ➔ 아래 (극성수송)아래 ➔ 위 (물관 이동)
가장 큰 효과세포 길이 성장, 뿌리 발근 촉진세포분열 촉진, 곁눈 생장 유도
재배 활용 예삽목 시 발근촉진제, 열매 솎기(적과)새 줄기 유도, 풍성한 곁가지 발생
옥신과 사이토카이닌이라는 호르몬에 따라 식물의 생리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도감

정단우성 현상: 가지치기를 하면 왜 새순이 쏟아져 나올까?

나무를 가만히 놔두면 맨 위쪽 꼭대기 눈(정아)만 왕성하게 자라고, 그 아래쪽 곁눈들은 숨죽인 듯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정단우성(Apical dominance)이라고 부릅니다.

꼭대기(정단)에서 잔뜩 만들어진 ‘옥신’이 아래로 계속 내려오면서, 아래쪽 곁눈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꾹꾹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올여름 제가 뽕나무와 블랙베리를 가꾸면서 직접 경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위로만 정신없이 자라던 뽕나무와 블랙베리의 꼭대기 가지를 과감하게 잘라주었더니(전정), 얼마 지나지 않아 억눌려 있던 수많은 곁눈들이 경쟁하듯 터져 나와 나무가 훨씬 풍성해졌습니다.

전정가위로 위쪽을 잘라내면 위에서 내려오던 옥신 공급이 뚝 끊깁니다.

이때 뿌리에서 쉼 없이 올라오던 ‘사이토카이닌’이 우세를 점하게 되면서, 비로소 곁눈들이 기지개를 켜고 자라나는 것이죠.

나무를 건강하고 풍성하게 키우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는 과학적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삽목과 접목 현장, 실전에서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이 호르몬들의 밀당을 이해하면, 텃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접목 후 눈이 안 트일 때: 접목은 잘 붙은 것 같은데 새순이 얼음처럼 굳어있다면, 대목(뿌리 쪽 나무)에서 다른 곁가지들이 자라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세요.

    대목의 불필요한 곁가지를 잘라내면, 뿌리에서 올라오는 사이토카이닌 신호가 오롯이 내가 붙인 접수 눈 쪽으로 집중되면서 새순을 틔울 확률이 훌쩍 높아집니다.
  • 삽목(꺾꽂이) 시 발근촉진제 사용: 옥신 농도를 인위적으로 높여 상처 부위가 잎이 아닌 ‘뿌리’를 만들도록 강력하게 유도하는 것입니다.

    단, 옥신 농도가 너무 높으면 오히려 식물의 생장이 멈춰버리므로 제품의 희석 비율(정량)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무리

옥신과 사이토카이닌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면서도 늘 짝을 이루어 움직이며 생명의 아름다운 형태를 빚어갑니다.

옥신은 대지를 향해 굳건히 뿌리를 내리게 하고, 사이토카이닌은 태양을 향해 가지를 뻗게 만들며 둘의 비율이 스위치 역할을 하죠.

삽목이 잘 안 붙거나 접목 눈이 안 트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두 호르몬의 저울질을 떠올려보세요. 가지치기를 할 때나 발근제를 사용할 때 훨씬 더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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