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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와 양파가 스스로 씨앗 맺기를 거부하는 이유

텃밭에서 대파나 부추, 양파를 키우다 보면 꽃은 참 예쁘게 피었는데 막상 까만 씨앗이 잘 안 맺혀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물도 잘 주고 햇빛도 좋은데 도대체 왜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식물들이 ‘가족끼리는 결혼하지 않으려는 자연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 용어로는 ‘자가불화합성‘과 ‘웅예선숙‘이라고 부르는데요. 말이 너무 어렵죠? 텃밭 농부의 눈높이에 맞춰 아주 쉽게, 그리고 채종에 꼭 필요한 팁만 뽑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파속작물의 씨앗맺기에 관해 설명하는 웹툰

파속 작물에 씨앗이 잘 안 맺히는 이유와 해결책

  • 자가불화합성: 튼튼한 후손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꽃가루(동일 유전자)를 거부하는 식물의 영리한 방어 시스템입니다.
  • 웅예선숙: 한 송이 꽃 안에서 수술과 암술이 자라는 타이밍을 엇갈리게 만들어 스스로 수정되는 것을 차단합니다.
  • 채종(씨앗 받기) 해결책: 대파나 부추 씨앗을 받으려면 반드시 5~6포기 이상을 빽빽하게 모아 심어 서로 다른 유전자가 섞이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내 꽃가루는 안 받을래!”— 자가불화합성

가장 핵심이 되는 특징이 바로 ‘자가불화합성(Self-Incompatibility)‘입니다.

사람도 근친교배를 하면 유전병이 생기듯, 식물도 자기 유전자끼리 결합하면 자손(씨앗)이 병에 약해지고 시름시름 앓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파속 작물들은 아주 똑똑한 면역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바람이나 벌을 타고 꽃가루가 암술에 딱 앉았을 때, 암술이 스캔해 보고 “어? 이거 내 꽃가루네? (유전자가 같네?)” 싶으면 싹이 트지 못하게 아예 문(수정 경로)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내 꽃가루도 건강하고 암술도 건강하지만, 튼튼한 후손을 위해 스스로 짝짓기를 거부하는 현상이죠.

“우린 엇갈린 운명이야” — 웅예선숙

여기에 더해, 대파나 양파는 아예 물리적인 방어막도 칩니다. 바로 ‘웅예선숙(Protoandry)‘이라는 타이밍 쪼개기 기술입니다.

대파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기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수술이 쑥 자라나와 꽃가루를 사방으로 날려 보냅니다. 이때 암술은 아직 덜 자라서 숨어 있습니다.

나중에, 수술이 임무를 다하고 쪼그라들 때쯤 비로소 암술이 성숙해서 꼿꼿하게 고개를 듭니다.

즉, 한 송이 꽃 안에서는 수술과 암술의 타이밍이 엇갈려 자기들끼리 맺어지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무조건 다른 포기에서 날아온 남의 꽃가루를 받아야만 씨앗이 맺히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파속 식물의 웅예선숙이란 무엇인지 설명하는 도감

마늘 · 양파 · 파 · 부추: 작물별 씨앗 맺기 비교

파 종류라고 해서 다 똑같은 방식을 쓰는 건 아닙니다. 작물별로 텃밭에서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 간단히 정리해 볼게요.

작물명텃밭 번식 특징씨앗 맺기 (채종) 난이도
마늘꽃이 펴도 씨앗이 안 생깁니다. (오랜 세월 사람이 쪽마늘과 주아로만 번식시켜서 씨앗 맺는 능력을 거의 잃어버렸습니다.)불가능에 가까움
양파남의 꽃가루를 아주 좋아합니다. 종묘회사에서는 양파 씨앗을 대량 생산할 때 아예 수술(꽃가루)이 안 나오는 돌연변이 종을 어미로 씁니다.씨앗 받기 매우 까다로움
대파 / 쪽파한두 포기만 덜렁 심어두면 씨앗이 잘 안 맺히고 쭉정이가 됩니다. 반드시 여러 대파를 모아 심어야 튼실한 씨앗이 열립니다.여러 포기 뭉쳐 심으면 가능
부추‘내 꽃가루 거부 현상(자가불화합성)’이 꽤 강합니다. 대파처럼 포기를 여러 개 군락으로 빽빽하게 심어야 씨앗이 잘 맺힙니다.여러 포기 뭉쳐 심으면 가능
파속 작물 씨앗 맺기 비교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한 도감

씨앗 맺기를 막는 두 가지 방식 (헷갈림 주의!)

종자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나오는 두 가지 개념을 딱 정리해 드릴게요.

  • 자가불화합성 (스스로 거부): 꽃가루도 정상, 암술도 정상. 하지만 “내 유전자는 안 돼!” 하고 수정을 튕겨내는 방어 시스템입니다. (대파, 부추)
  • 웅성불임 (체질적 불임): 암술은 정상인데, 선천적인 유전자 결함 때문에 처음부터 꽃가루 자체를 아예 못 만드는 체질입니다. 씨앗 회사들이 원치 않는 자가수정을 막고 우수한 양파 씨앗(F1)을 찍어낼 때 이 체질을 알뜰하게 활용합니다.

마무리- 텃밭에서 튼실한 대파·부추 씨앗 받는 3가지 꿀팁

겉보기엔 씨앗 맺기를 방해하는 깐깐한 성질 같지만, 사실 이는 대대손손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한 자연의 위대한 선택입니다.

올해 텃밭에서 대파나 부추 씨앗을 직접 받아 내년에도 심고 싶으시다면, 이 3가지만 꼭 실천해 보세요!

  • 여러 포기를 한데 모아 심기: 유전자가 서로 섞일 수 있도록, 꽃대를 올릴 대파나 부추를 최소 5~6포기 이상 빽빽하게 모아주세요.
  • 꽃가루 도우미 부르기: 파꽃 주변에 메리골드(금잔화)나 코스모스처럼 꿀이 많은 꽃을 심어주세요. 벌과 나비들이 부지런히 날아와 남의 꽃가루를 배달해 줍니다.
  • 까맣게 여물 때까지 기다리기: 깐깐한 과정을 거쳐 맺힌 귀한 씨앗입니다. 꽃방이 완전히 벌어지고 씨앗이 새까맣게 영글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수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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